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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크릴 상자
    잡담 2015. 10. 6. 06:14

     어릴 때 부터 나는 담배연기 냄새를 무척이나 싫어해서 집에서 유난을 떨곤 했다.

    어디선가 냄새가 조금만 나도 창문을 다 닫았고,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말로 양초를 피우면 냄새가 사라진다 그래서 담배냄새가 나면 양초를 피우기도 했고, 간혹 큰 소리로 "담배 좀 그만 펴라!" 라고 창 밖에 대고 외치기도 했다. 그 정도로 담배냄새가 싫었다. 매캐한 담배냄새를 맡으면 불쾌하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많이 너그러워진 편이지만 여전히 담배냄새를 맡으면 목이 아프고 힘들다.

     어릴적 담배냄새로 짜증이 날 때면 모든 담배피는 사람들이 아크릴 박스를 머리에 썼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아크릴 박스를 써서 담배 때문에 생기는 모든 연기를 담배 피우는 사람만 마실 수 있게하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피울 수 있어서 좋고, 다른 사람들도 담배냄새를 안 맡을수 있어서 좋고 모두가 행복한 해결책이라 믿었다. 실현가능성은 그 때도 희박해 보였지만...

     스위스 교환학생이 확정되었을 때, 한 학기동안은 담배냄새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맑디 맑은 스위스에 담배란 어울리지 않았다. 모두가 아침마다 조깅을 하며 식사는 건강식으로만 챙겨먹는 그런 생활, 그런 삶이 내가 가진 스위스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두 달 가까이 스위스에 살아보니 생각과는 전혀 딴 판이다. 사실 놀랍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전혀 과장하지 않고 우리나라보다 스위스에 담배가 더 만연해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흔히 '길빵'이라고 하며 안좋게 여기지만 스위스에서는 길빵은 기본이다. 첫째로 놀란 것은 (조금은 성차별적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으나) 여성 흡연자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보수적 시각 때문에 사회적으로 다소 억압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바로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도 흡연을 한다는 점이다. 여성이 많이 피우고 남성이 많이 피우고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지만 부모들이나 아이들과 같이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내 상식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한 손에는 아이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담배를 피우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유모차를 끄는 한 여성이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며 가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이 줄었고, 공공장소에서는 피우지 못하게 되어 거리가 굉장히 쾌적한 반면에 스위스는 조금만 걷다 보면 알싸한 담배냄새를 주기적으로 맡게 된다.

     나는 한 참 동안 아크릴 박스에 대한 생각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스위스에 와서 수 많은 담배연기에 둘러싸여있다보니 문득 다시금 아크릴 박스에 대한 나의 옛 생각이 떠올랐다. 여전히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스위스 흡연자 모두가 아크릴 박스를 쓰고 담배를 펴야 한다면 어떨까. 

    유쾌한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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